6월 26일 설교요약 및 주보

겨자씨와 누룩

Mustard Seed and Leaven【마태복음 13:31-33】 2022.06.26(주일)

서론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겨자씨 비유와 누룩의 비유는 다른 비유이지만 교훈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비유는 진리를 구하는 자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어떤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비유는 어떤 때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진의는 무엇일까요?

1. 겨자씨 비유 (31-32)

(1)일반적인 해석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앗이지만 나무처럼 성장하여 새들이 깃들일 만큼 성장한다는 해석입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으면 천국의 확장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겨자씨와 나무와 새들

겨자씨가 나무가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예수께서 랍비로서 당시에 유행하던 과장법을 사용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나무는 적그리스도의 유형으로 나오기도 합니다(단 4:20-22). 공중의 새들은 종종 더러운 영들 곧 마귀를 상징합니다(마 13:4, 19, 렘 5:27, 겔 31:13, 눅 13:19- 21).

(3)겨자씨와 갈릴리

겨자씨 비유는 예수님의 사역 중심지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주어졌습니다. 매년 2-3월경에 갈릴리 호수 근처에 노랗게 피는 야생 꽃이 바로 겨자나무로 불리우는 겨자 꽃입니다. 나무라고 불리우기 보다는 채소나 풀로 부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듣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릴리 출신들로 예수님의 비유를 잘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겨자씨는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씨앗이었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예수께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하실 것을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1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 9:1-2).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야생의 잡초에 불과한 겨자씨를 자기 밭에 가져다 심고 가꾸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 당시 랍비들은 과장법이라는 수사학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랍비로서 랍비들이 사용하던 과장법을 적절히 사용하셨습니다.

겨자나무는 잡초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의 밭에 옮겨 심어서 가꿔 세계복음화의 기초를 세우시겠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를 제외하면 11명이 모두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잡초와 같은 어부들 민초들을 선택하셔서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겨자나무 같은 보잘것 없는 잡초들을 부르시고 가꾸시고 온 천하의 복음을 얻어 먹으려고 새들이 날아와 깃들이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천국백성을 만드는데 마귀도 가만 있지 않겠지요? 복음을 변질시켜 번영신학이나 기복신앙을 가르쳐 위대한 교회 위대한 사람 위대한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가 야합하여 음녀 교회를 이용하여 성도들을 타락하게 하고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설 것입니다.

겨자나무와 같은 잡초들이 십자가의 고난의 복음과 부활과 재림에 기초한 복음적인 교회가 성장하여 세계선교를 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메가톤급, 맘모스, 점보, 초대형 교회들이 적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면 교회의 피해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초대교회 때에도 종교지도자들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그런 일을 했습니다. 중세기에는 로마 카톨릭을 통해서 그런 역사를 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음녀 교회가 등장하여 많은 성도들을 죽이고 핍박하고 고통을 가할 것입니다.

이렇게 겨자씨의 비유는 좋은 면과 나쁜 면 양쪽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면은 갈릴리 어부들 잡초 겨자씨 같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밭에 심고 가꿔서 세계복음화를 하게 하시고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깃들일 수 있게 된 면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교회에 침투하여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에 번영신학과 기복신앙과 표적신앙과 세상의 지혜를 구하도록 하여 타락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나쁜 면에 해당됩니다.

2. 누룩 비유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1)일반적 해석

무교절 빵을 만들 때는 무교병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칠칠절(오순절)의 빵 두개는 누룩을 넣어 만듭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의 예표가 되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고 사도와 성도들이 하나가 되는 예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룩은 성령의 역사를 나타낸다고 해석합니다.

(2)여자,누룩, 가루

많은 학자들이 여자는 교회, 누룩은 복음, 가루는 세상으로 해석합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회심할 때까지 복음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이 비유가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교회는 한 정결한 처녀, 아내와 신부로 표현합니다. 누룩은 거짓 교리(마 16:6-12, 눅 20:46, 막 7:6-13)이며 죄를 상징합니다(고전 5:6-8). 가루는 곡식으로 만들어지며 곡식은 천국의 자녀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마 13:30).

(3)누룩 비유의 진의는?

33절 원문에는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에서 여자가 다음에 “몰래” 혹은 “숨겨”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레위기 2:1절과 11절 말씀과 연관된 듯합니다. 히브리어로 보면 누룩을 넣는다는 동사가 여성형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가루 서말”이란 말씀을 보아 일반 가정에서 먹는 양의 빵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구약시대에는 남자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여자가 몰래 진설병이나 무교병의 빵에 누룩을 넣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여자는 가정에서 먹는 빵에 누룩을 넣습니다. 무교병을 만들 때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사장들은 여자가 가루에 누룩을 넣지 못하도록 지켜야 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역사상에 있었던 거짓 선지자들이 더 많이 나올 것입니다. 교회는 여자(예: 가톨릭, WCC 등)가 몰래 가루에 넣은 누룩 때문에 엄청 나게 양적으로 팽창하지만 타락한 음녀 교회와 야합하는 교회가 많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에 나오는 음녀, 바벨론은 멸망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결론

이렇게 예수께서 두 가지의 비유를 통하여 이중적인 뜻을 말씀하셨다고 생각됩니다. 겨자씨 비유에도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누룩 비유에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양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두 비유를 통하여 종말에 일어날 현상들을 보면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의를 깨달아 천국 복음에서 떠나서는 안되겠습니다.

다음의 질문에 답해 봅시다.

(1)겨자씨, 나무, 새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2)누룩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3)예수께서 두 비유를 통해서 하신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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